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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신림동. 고시원 및 작은 미니원룸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신림동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비가 저렴하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보면서 논문도 쓸겸 머물고 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지 벌써 6개월째. 특정 시험에 대한 불안 내지 간절함이 없어서인지, 좁은 방에서 폐인 모드로 지내는 날이 점점 늘고 있다. 담배와 생수 라면 몇개만 있으면 충분한 삶이다.

이런 생활의 초기에는 나름 생활계획이라는 것도 있어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며, 매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겨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모든 소통의 창을 닫아두고 혼자서 지낸다는 것이 생활을 정갈하게 다듬어주는 면도 있지만, 한없는 무기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 동네의 지배적인 정서일지도 모른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골방에 들어앉아 참고 견뎌야 하는 수도승의 생활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늘 차분해 보인다.

그러나 무기력에 빠져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들이 꼭 비생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시간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넘어 끊임없는 잡념으로 이어지는데, 때마침 서른을 갓 넘어서고 있다는 절묘한 타이밍과 함께 과잉감정 또는 의미있는 기억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바로 이때가 '무엇인가 이루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내 처지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거슬러 거슬로 올라가다보면 나의 유년과 만나게 되는데, 왜 그렇게 지난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 그당시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에 대한 유치한 생각에 빠져보기도 하는 것이다. 또 '나'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무리 속에서의 내가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기도 한다. 이쯤되면 서로 상처를 주고 받던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그땐 정말 미안했어'라고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가 맹신하던 것'들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이 나의 오만과 고집이라는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나를 구성해오던 모든 원리와 토대를 무너뜨리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의 것들이 붕괴된 자리에서 무엇인가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나에 대한 '자존감'은 지켜야 하니까.

독백 2010/08/17 17:57  트랙백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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