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여기는 신림동입니다. 특히 고시원과 미니원룸이 밀집해 있는, 신림동에서도 가장 깊숙하면서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곳입니다. 때문에 버스를 타러 나가거나 제대로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집 또는 집 주변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가까운 생활반경에 슈펴가 3개 있습니다. 하나는 24시간 영업을 하고 나머지 두개는 주변의 독서실이 문열고 닫는 시간에 맞추어 영업을 합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을 포함 3개의 슈퍼로 이루어진 조합은 제게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밤중이라도 담배가 생각나 견딜수가 없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곤혹스러운 순간이죠. 비가 심하게 오거나 눈이 쏟아붓거나 하는 난관에 봉착해도 그리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아마 이 순간은 제가 제일 부지런한 순간일 겁니다. 오늘 일을 내일로 곧잘 미루곤 하는 저도 담배를 사러 나가는 수고를 기쁘게 감당해내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담배를 사러 슈퍼에 가는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본적이 있었습니다. 가관이더군요. 이곳 트렌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디다스 삼선 츄리닝과 슬리퍼, 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한 수염 거기에 번들거리는 머리와 얼굴. 누가 봐도 하는 일이 없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차림이었습니다. 거기에 시도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담배와 라면, 생수, 화장지 등을 구입했으니 눈썰미가 있는 주인이라면 나태한 저의 생활패턴까지 충분히 짐작했을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저에대한 슈퍼아줌마의 태도도 많이 변한것 같습니다. 처음 이사와서 쓰레기 봉투와 락스, 세재 등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입할 때만해도 상냥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는 무슨 요일에 내놓아야 하는지, 어느 식당이 맛있고 어떤 고시원 분위기가 좋은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서 '수치'를 엿본 후, 아주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데 저렇게 빈둥거리지? 보아하니 딱히 하는 일도 없는 사람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3군데의 편의점을 번갈아가며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담배 하나 사러 가는데 세수에 면도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누추함을 조금씩 분산시키면 조금은 덜 쪽팔릴 수 있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일종의 얄팍한 술수!
그래서 이제 생활을 좀 가다듬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펴고 기죽지 않기로 했습니다. 곧 담배도 끊기로 했으니까 더 당당해질 수 있을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