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모습과 내가 꿈꿔왔던 모습은 과연 일치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해 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시련의 시간을 견디면서 나는 가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곤 한다. '과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 때 나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등등이 앞에서 말한 질문들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는 나에게 그 어떤 질문도 제기하지 않았었다. 이런 물음들의 대부분은 보통 사춘기나 혹은 찬란했던 20대의 방황 속에서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적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질문들을 생략한 체, 어느덧 30대 초입에 들어선 지금 새삼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장래에 대한 계획이 계속 틀어지고, 나태와 게으름이 반복되면서 나의 목표와 계획들은 빈번하게 수정되었다. 문장은 무뎌지고, 내 팔과 다리의 근력은 퇴행되고, 내 인식의 힘은 이제 아무것도 물고 늘어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시련의 시간들이 계속되는 동안 내 척추는 삶의 모든 의지들을 상실하게 되고 말았다. 한 쪽 구석의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지경에 이르러서야 하나 둘,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러한 질문들에 적확한 답을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질문들의 대부분은 정답을 구하는 것 보다 질문을 던지는 행위 그 자체가 의미있는 일임을 알고 있다. 특히 이런 시련의 시간들이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날 것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거리를 만들어주고 있어 내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 더욱 유효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 자서전을 써보기로 했다. 내 삶을 치장해서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말이 자서전이지,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동안 방치해두었던 내 인생들을 정리해서, 두루두루 되새기며, 앞으로 내 삶의 어느 국면에서 읊조리게 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참고로 앞으로 시작될 자서전의 질문들은 린다 스펜스의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에서 제기하고 있는 질문들과 일상에서 나에게 던져주는 질문들에 대한 나의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