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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의 어머니는 환갑이 넘으셨다. 이 말은 어머니의 세대를 드러내는 수사다. 그런 여친에게서 종종 어머님의 음악적 취향을 전해듣곤 했는데, 여친이 괜찮은 음악이라도 소개하면서 이야기의 공통된 화제를 만들어 내기라도 할라치면 늘 "나는 윤형주, 송창식 세대야"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여친을 통해 전해 들을 말만으로는 그 말의 뉘앙스를 짐작할 수 없었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우리가 듣기에는 어떤 정서적 공감을 마련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나의 앞선 세대이며 그들만의 무대에서 노래하는 철지난 가수들이었다.

나에게 세시봉은 그저 60년대 그들만의 리그였으며 그들은 골목을 주름잡던 골목대장들일 뿐이었다. 그만큼 "나는 윤형주, 송창식 세대야"라는 멘션은 단순 진술에 불과했다. 적어도 '놀러와'를 통해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라는 세시봉 친구들 특집을 보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 무미건조하게만 읽여지던 "나는 윤형주, 송창식 세대야"라는 언급이 대단한 자부심이며 추억의 터널을 지나온 이 시점에서 고심끝에 발화되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된 것이다.

사실 조영남은 화개장터와 이상한 제스춰로 이제는 그의 음악보다 '준'기행으로, 윤형주는 윤동주 시인과의 연관성으로, 송창식은 왜불러 또는 몇 곡의 금지곡으로, 김세환은 그저 아줌마들이 좋아할 만한 얼굴로 기억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관습적인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좀 다른 이유를 붙혀가며 김민기나 양희은 정도에 공감한다고 믿고 싶겠지만 이는 이률배반적이다. 더욱이 산업으로서의 대중음악은 아티스트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서 다소 왜곡된 얼굴들이 주섬주섬 악기를 챙겨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이 일시에 기지개를 켜면서 휘어있던 척추를 똑바로 세워주는 듯한 개운함을 주었다. 그런데 그 근육과 뼈들이 전혀 녹슬지 않았다. 소름이 돋았고 이하늘은 울었다. 간혹 송창식을 통해 후배 세대의 오락프로에 출연하게 된 것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되기도 했지만 뼛속부터 딴따라인지라 자기 자신을 지우면서 분위기를 이끌기보다는 자신의 색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압도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이렇듯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본 것이 얼마만이더냐. 가사에서 전해지던 서정을 만끽한 것이 얼마만이더냐. '우워워' 하는 식의 소몰이 트레이닝 산물이 아닌, 감미로움 그 자체의 목소리는 오히려 구식이어서 신선했다. 환갑 넘은 조영남의 철들지 못함이, 윤형주의 더블베이스 연주가, 송창식의 폭발하는 감성이, 김세환의 친근함이 자신의 세대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그 누구의 세대라고 단언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오늘부터 윤형주와 송창식의 팬이 되기로 했다.)

독백 2010/10/10 09:01  트랙백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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