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나는 '갈품'이라는 교내 문학동아리에 들어갔다. 남녀공학이어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 여학생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뭐, 시라는 것을 쓰곤 했다. 90년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던 시대였던 만큼 지금 생각해보면 시라는 장르 자체가 다소 시대착오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것을 평생 해보겠다고 지금은 전공으로 선택해 말도 않되는 생각과 글을 남발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시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우쭐해 할 수 있는 객기가 내게 있었다. 나는 여차저차한 면접을 치르고 동아리에 입회하게 됐는데, 간단한 신입생 환영회라는 것이 있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이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휴일의 빈 교실을 빌려서 다과회를 즐긴 것이 전부였다. 우리 신입생들은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당시 김현식이 부른 '골목길'을 불렀다. 그것도 나름대로 열창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머리를 짧게 깎은 17살의 소년이 청바지에 파스텔톤의 스웨터를 입고 두손을 가지런히 모은 후에 '골목길'을 열창한 것이다. 그 쑥스러움 때문인지 가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무슨 이유때문인지 얼굴이 붉어지곤한다. 특히 올해는 김현식의 20주기여서 더 자주 그의 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래서 인지 올해는 혼자서 조용히 얼굴을 붉히는 일이 더 자주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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