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 가지고 있는 주술도 이제는 약발이 다한 듯하다. 결심을 파기하는데 망설임이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여자 친구와 다투고 줄담배를 태웠고 화해했다. 늘 사소한 일이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다툼이 파국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기 위한 모색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동 하나하나를 인지하고 움직인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삶을 교정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그 어느때보다 진정함을 바탕으로 돌아보았고 후회할 일에 대해서 잠시 후회하고 털어버렸다. 언제부턴가 오랜 고뇌로도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에 수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병석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고, 병간호로 지쳐가는 엄마를 위로했다. 나의 간절함으로도 주변인들을 고통 속에서 구원하지 못할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잠시 스쳐간 생각이다.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언제나 똑같았다. 언제나 평온한 대화이지만 서로에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한번도 내 삶에 대해서 재촉하지 않으셨다. 다시 담배를 몇대 태웠고, 창밖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도심 한 복판에 솟아있는 자연녹지를 내려다보며 '그래 나는 시인이었지'라도 잠자고 있던 자의식에 말을 걸었다. 내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직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몇마디 웅얼거리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이것 저것 훑었다. 한동안 책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으며, 어떠한 정서도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이것은 산 사람의 의식이라 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다독여 전집 중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읽으며 밑줄을 그어 놓은 부분들이 수두룩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밑줄에는 아무런 맥락이 없었다. 슬데없는 곳에 알록달록 밑줄을 그었을 뿐이었다.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결혼 소식을 알리는 선배의 전화를 받았고 다이어리에 메모해두었다. 잠시 동안의 반가움. 애호박과 바지락을 사다가 칼국수를 끓여 저녁을 먹었다. 다시 담배를 몇대 태웠고, TV 앞에서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다 잠이 들었다. 삶은 그야말로 쉽게 바뀌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