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한번도 온전하게 인간이었던 적이 있을까? 이러한 물은 매우 근원적인 질문에 해당한다. 인간의 몸은 온전하게 하나였으며 이렇게 하나인 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인간은 한번도 기계, 도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밥먹을 때에도 수저를 사용하고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안경을 쓴다. 이가 상했을 때는 때우기도 하는데, 요즘은 임플란트라는 것이 있다. 다리가 하나 없으며 의족을 사용한다. 사실 이러한 기계들은 매우 단순한 예에 불과하다. 이보다 발전된 예로 컴퓨터 칩을 사용하여 인간의 몸을 통제하고 원격 조정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들이 실제로 있어 왔다. 이제 인간의 몸에서 구현되는 기계적인 요소들은 더이상 낯선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계적 요소들이 인간을 넘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겉으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의 다리와 흡사한 의족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인간일까?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양쪽 팔을 최첨단 의수로 대신했다고 해보자. 그는 인간일까? 물론 아직까지는 쉽게 '인간'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장기관과 뇌의 일부, 오른 쪽 눈 역시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과연 인간일까? 또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가 오른쪽 볼살 일부와 왼쪽 새끼 손가락의 둘째 마디 정도만 남기고 모두 대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굳이 '테세우스의 배'를 예로 들지 않아도, 이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이것이 내가 싸이보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또한 여기에는 복잡하게 교차되는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터미네이터 역시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마커스의 혼란은 이에 기초한다. 물론 아직은 영화가 인간의 것이어서 마커스의 혼란은 오래가지 않는다. 영화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승리로 귀결되고, 마커스는 존 코너에게 자신의 심장을 기증하며 자신의 기계적 속성을 벗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인간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결말일 수도 있지만, 인간에 대한 기계의 정복에 대한 두려움의 무의식적 표현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