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시다. 간암말기.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병원에 찾아뵈었는데, 노랗게 변해 있는 눈동자와 얼굴이 정상의 사람과 달랐다. 병원에서도 손을 놓았다고 한다. 부모님께서도 어제 일찍 서울에 올라오셔서 내내 병원에 머물고 계신다. 아직 정신이 있을때 찾아뵈야 한다며 흩어져 있던 가족들을 하나둘 불러모았다.
작은 어머니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첫째와 군복무중인 둘째에게 사실을 알리고 마지막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고 계셨다. 둘째가 먼저 부대의 허락을 받고 휴가를 나왔고, 첫째는 일본에서의 계획을 모두 최소하고 귀국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작은 어머니의 침대 주위에 모여들었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지만, 그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계의 도움으로 혈압을 조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혈압유지 기계를 치우면 모래시계처럼 마지막 순간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작은 집 식구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어서인지 병실에서는 몇차례 찬송가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병원을 순회하며 환자에게 용기를 주는 자원봉사자들이었는데, 전도를 목적으로 길거리에서 울려퍼지던 찬송가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들중 일부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 역시 그러하겠지만 죽음은 언제나 최후의 순간이다.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있기에 모든 오해와 갈등, 증오의 모든 것들이 뒤섞여버린다. 그야말로 혼란의 순간이며 그 혼란으로 인해서 평정을 찾는 순간인 것 같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우셨다.
1805호 병실은 곧 이별의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에 대한 경건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편에 남는,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저편으로 떠나는 사람의 길에 배웅을 나서고 있다. 비단 이것이 우리 가족만의 고통은 아니겠지만 떠나 보내는 사람은 떠나가는 자를 기억하기 위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간절하게 기적을 소망해 본다.
사무엘, 내 세례명이다. 나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은 어린이였다. 한때 신부가 되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물론 부모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두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장하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인간의 힘을 더 믿었으며, 죽음은 언제나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오신 아버지와 내 자취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비좁은 방이어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잘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작은 어머니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첫째와 군복무중인 둘째에게 사실을 알리고 마지막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고 계셨다. 둘째가 먼저 부대의 허락을 받고 휴가를 나왔고, 첫째는 일본에서의 계획을 모두 최소하고 귀국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작은 어머니의 침대 주위에 모여들었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지만, 그저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계의 도움으로 혈압을 조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혈압유지 기계를 치우면 모래시계처럼 마지막 순간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작은 집 식구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어서인지 병실에서는 몇차례 찬송가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병원을 순회하며 환자에게 용기를 주는 자원봉사자들이었는데, 전도를 목적으로 길거리에서 울려퍼지던 찬송가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들중 일부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 역시 그러하겠지만 죽음은 언제나 최후의 순간이다.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있기에 모든 오해와 갈등, 증오의 모든 것들이 뒤섞여버린다. 그야말로 혼란의 순간이며 그 혼란으로 인해서 평정을 찾는 순간인 것 같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우셨다.
1805호 병실은 곧 이별의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에 대한 경건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편에 남는,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저편으로 떠나는 사람의 길에 배웅을 나서고 있다. 비단 이것이 우리 가족만의 고통은 아니겠지만 떠나 보내는 사람은 떠나가는 자를 기억하기 위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간절하게 기적을 소망해 본다.
사무엘, 내 세례명이다. 나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은 어린이였다. 한때 신부가 되겠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물론 부모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두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장하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인간의 힘을 더 믿었으며, 죽음은 언제나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오신 아버지와 내 자취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비좁은 방이어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잘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기적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살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는지 모른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지 깨닫는 순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가지고 살다보면 인간은 기적처럼 삶을 견딜수 있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한쪽 귀로 듣고 곧 흘려보낼 이야기였지만 조만간 가까운 성당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는 정년 후 중풍으로 몇 번 고비를 넘기셨다. 그 뒤로 나는 부쩍 아버지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제 조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며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어떤 소식이든 간에 죽음 앞에서 습관적으로 슬퍼하거나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요 며칠사이 나를 다녀간 생각들을 영원히 간직해야 겠다.
작은 어머니의 쾌유를 빈다.
+) 이전 블로그에서 2009/06/01 01:04 에 작성된 글을 새롭게 옮겼습니다. 이글이 작성되고 며칠 후, 작은 어머니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