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 여섯,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뭐 특별히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시간들에 대해 난 내 유년기에 있어서 "중세"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엄격한 학교의 교칙이나 부모님의 말씀이 내 생활양식의 대부분을 형성했으며 언제나 난 공상, 상상 등의 생각 속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어떤 경우는 그러한 상상에서의 자유조차도 강제 당하곤 했던 거 같다. 간혹 이탈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이상한 비디오나 잡지 혹은 음담패설을 즐기는 등, 기존의 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곤 하는 것들이어서 인생에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거나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 살펴보니, 보다 심한 굴절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 시절을 나의 유년이라고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순수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때문인지 난 소설속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좋다.
그는 좋아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싫어한다. 16살, 어린 소년의 눈으로 읽어냈다고 생각하기 힘든 정도의 냉소와 반항이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기성의 사회로 편입된 사회의 위선과 가치에 대한 조롱이다. 그러한 순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조롱으로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것이다. 그는 순수를 공격하는 침입자들에게 맨 몸으로 맞섰지만 사회는 그런 주인공에게 등을 돌린다. 그래서 그는 이 작품의 제목처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한다. 시간에 떠밀려 어딘가에 순수함 두고 온 사람들, 그로인해 울적해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끝으로 그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는 귀여운 여동생, '피비'와의 대화를 잠깐 읽어보자.
......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 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린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