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시를 읽다가 몇해전 졸업식 후 기록했던 나의 소박한 다짐을 발견했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냥 잊혀졌을 법한 내용들인데, 아직 그 다짐이 유효한지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갑자기 간절함, 열망 같은 것들이 몹시 그리워진다.
졸업에 부처
지난 16일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적절한 시기에 졸업한 것이지만 꼽아보니 나는 여덟 번의 봄을 대학에서 보냈던 것이다. 내가 떠나보낸 그 봄들은 지금 어디까지 나를 따라와 주었을까. 나를 쫓아 꾸준하게 따라온 시간들도 있지만 나는 그 모든 시간들을 기록해두거나 詩의 문장으로 만들어두지 못했다. 새로운 사상들이 내 안으로 몰려들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비워야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는 다시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나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어처구니없게도 두려움뿐이다.
그것은 ‘졸업’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보여주는 공포는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 늘 그 이전과 이후를 생각해 보게 하듯이 졸업은 내 뒤로 잇닿은 지난 날을 되돌아 보게 함과 동시에 앞날을 꿈꾸어 보게 한다. 그렇게 지난 몇 년 동안의 詩쓰기는 즐거운 고통이었다. 내 詩쓰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대학에서였고, 또 나의 詩쓰기를 지지해주고 때론 혹독한 질책을 주기도 한 곳 역시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졸업이라는 말은 내 詩쓰기를 무장해제 시켜버린 것이다. 앞으로 나는 詩를 쓰면서 더욱더 위안을 받거나 아니면 들어주는 이 하나 없이, 더욱더 비참하고 처절하게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이다. 풋내나지만 진지했던 시절들을 다 보내고 나는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아직도 처음 詩를 쓰기 시작할 때의 열병처럼 기형도의 詩를 떠 올렸는지 모른다. 꾸준하고 오래도록 쓰는 詩人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