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때문에 시인이 되고자 했을까?"


요즘들어 내가 많이 하는 생각중 하나다. 물론 그간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쓰고 고민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아까운 시간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결혼을 하고 직장을 얻기까지, 내 삶의 절반 이상을 나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전력했던 것같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나의 정체를 고민할 때, 시(詩)를 빼놓고 생각하기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고 문장들을 고민하며 지금 나의 세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구축된 나의 세계가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 나는 우선 나보다 먼저 시인이 되었던 사람들의 글을 부지런히 찾아서 읽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유명 출판사의 시집 시리즈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하나의 훈장처럼 자랑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들의 시집뿐 아니라 그들의 삶,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기위해 오랜시간 신춘문예에 투고하며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전공을 바꾼 일이나, 대학원에 진학해 현대시를 전공한 일도 모두 시를 쓰는 삶,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기 위함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시인이 되었다. 아니 등단을 통해 지면을 허락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을 좇아, 정답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 후에는 청탁을 받고 문예지에 작품을 싣는 일, 또 다른 시인들과 함께 교류하며 문학적 역량을 쌓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제때 시집을 출간해야 하며 꾸준하게 자신의 시를 공적 영역을 향해 띄워보내야 했다. 역량이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제 생각해보니 '시인'이 된다는 것과 '등단'은 별개의 것이었다. 현대시를 전공하고 그 덕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과 시인이 되는 일은 또 별개의 것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든 내 삶을 온전하게 나의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자라면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현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시는 엄연히 하나의 장르이고 그것으로서 예술이다. 낭만적 수사로 설명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를 쓰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어떠한 시를 써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삶은 늘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쓰는 삶을 위해 소진되었다. 일종의 번아웃(burnout)이다. 부지런히 시를 뒤쫓아 가는 과정에서 나의 삶은 멀찌감치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삶의 방향이나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 시를 써야하며, 내가 쓰는 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무엇보다 궁금했다. 이것은 내가 쓰는 시가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내가 쓰는 글에 나의 삶이 질질 끌려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내가 쓰는 시가 나의 삶의 방향이 되어주고 또 그러한 삶에서 나오는 글이 나의 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그렇지만, 답답한 마음에 두서없이 적어본다. 


2018.3.18.


나쁘게 말하다 2018. 3. 18. 01:37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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