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강의전담교수로 일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시를 전공했지만 현장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강좌들은 전공과 다소 거리가 있는 기초교양필수 강좌들이다. 주로 읽기와 쓰기를 통해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기르는데 초점 맞춘 강좌들이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읽기 자료를 나누어주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때 내가 주로 활용하는 텍스트들은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글들을 선별하고 일부를 발췌한 자료들이다. 물론 나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포괄적 이해를 바탕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함께 읽어나간다. 그리고 학생들이 제출한 결과물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글을 읽었는지 가늠해본다. 결과를 통해 예측해 봤을 때, 이것은 학생들에게 그리 수월한 작업이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텍스트의 적극적인 독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초교양필수 강좌의 경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졸업요건을 갖추기 위해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발적 참여의지가 부족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이것은 교수자의 역량탓이라 생각하지만, 학기마다 준비하는 텍스트의 분량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나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보다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해주었을 때, 더 의욕적이다. 교수자로서 수업이 활기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는 질문과 답변을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 아니라, 교수자의 강의를 받아 적는 순간이다. 학생들은 교수자의 수업을 효과적으로 받아적는데 매우 익숙하다. 칠판에 판서한 내용에서 시험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면 바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놓는다. 물론 전공 수업에서는 이와 다른 양상을 보일거라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 서로에게 선물이 되지 못한다. 학생들은 그들이 낸 돈만큼 학점으로 환원될길 강력하게 기대하고, 교수자들은 강의평가를 염두에 두고 강의의 수위를 조절한다. 이러한 교환이 둘 중 어느 한 쪽에라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둘다 죽는 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오늘 오전에 수업을 듣는 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OOO수업은 어떻게 예습하고 복습해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매우 성실한 학생의 질문이다. 다른 수업은 예측가능하지만 OOO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친구의 경우, 주전공, 복수전공, 대외활동 등 이미 대학생활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해둔 방향대로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OOO 수업의 경우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어 심경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계획대로 삶이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이해가는 이야기 이지만, 나는 어떤 구체적인 답변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 해당 수업의 주된 내용은 '우리가 사는 세계', 근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 너머를 사유해보려는 의도로 기획한 것이었다. 주로 우리 일상에서의 경험을 소재로 토론을 진행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식으로 수업을 마무리 하는데, 전화를 받고 내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 수업의 의도와 정반대편에 서 있는 학생의 질문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 학생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루종일 읽기자료를 정리하고 함께 제공할 자료를 준비하다보니 벌써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나쁘게 말하다 2018. 3. 18. 18:2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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