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네사 R. 슈와르츠,구경꾼의 탄생,2006


종종 'OO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책을 접하게 된다. 이런 책의 대부분은 탄생하는 대상의 기원을 찾는 사적 탐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구경꾼의 탄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탄생의 대상에 대한 역사이며 이를 재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문헌 조사를 통한 실증적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이 책은 19세기 후반 파리에 존재했던 다양한 시각적 관습과 활동으로부터 영화가 출현하기까지를 그 검토 대상으로 하고 있다.


현대를 영상매체의 시대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매체의 변화를 가리키는 지시적 표현의 차원을 넘어서, 어느 정도 시대정신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시각은 근대의 인식을 특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선과 권력'에 국한된 푸코의 인식을 벗어나, '시선과 권력'의 주체도 '감시와 통제'의 대상, (이 책의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구경'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생산'과 노동에서 '소비와 여가'로의 전환이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특성을 고려해 보아도, 푸코의 인식보다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구경의 대상이면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군중의 등장과 이들의 대중문화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소비자의 지위는 중요한 논점이 되기 때문이다.


구경은 시각에 의해 대상을 타자화하는 방식인데, 인간은 이 과정에서 모종의 즐거움을 얻는다. "그들은 구경할 수 있는 기회만 마주치면 구경의 대상이 무엇인든 상관없이, 구경에 수반되는 도덕적 책임에 개의치 않으며 구경에 몰두한다. 근대의 대중문화는 한마디로 JUST LOOKING과 JUST FUN의 세계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시각적인 것이 부추기는 대중문화의 소비양상이나 소비에 종속되는 대중에 대한 가치판단을 전제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시각적인 것은 민주주의적이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월등하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파리의 대로화 작업인, 오스망화로부터 비롯된다. 대로가 정비되면서 거리는 인간에게 많은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카페가 생기고 사람들은 카페에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또한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산책자 역시 구경의 주체가 되지만 역으로 구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로와 결합하면서 백화점이 형성되었으며, 구경거리 속에서 구경거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개선된 유리 쇼윈도의 등장과 조명기술의 발달은 구경거리에 대한 환상을 더욱 밀도 있게 만들었다.



시체공시소


시각적인 대상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저자는 시체공시로 (모르그)를 들고 있다. 시체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대중에게 시체를 공개하던 시체공시소는 그 의도와 다르게 일종의 볼거리로서 구경꾼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변질된다. 특히 어린이나 여성의 시체, 잔인한 살인극의 대상이 되는 시체가 전시되는 날이며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신문매체는 시체와 얽힌 스토리를 가미해 추측성 기사를 보도한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신문의 판매부수와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언론매체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처험 파리의 일상은 텍스트 속에서, 텍스트로 재현되었으며 소비자로서의 군중들은 이것을 소비한다. 


시체공시소가 폐쇄된 이후, 밀납인형 박물관이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이때 단순한 구경거리로서의 밀납인형보다 스토리를 보여주는 밀납인형 전시가 인기를 끌었음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구경거리가 파노라마로 이어지고 이후 세계 최초의 영화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상성이, 증기기관차의 발명과 그로인해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만국박람회에서의 전시를 통한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짓기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사실 책의 내용은 새로운 구경거리로서 영화의 탄생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시각적 쾌락이 대중문화의 중요한 속성이 되고 있는 현대사회를 고려해 볼때, 다양하게 확장, 변주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가상의 공간이나 방송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가상체험 프로그램, 재연 프로그램 등을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는 각종 테마파크와 그에 따른 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주목받기 시작하는 시대적 분위기까지 그 고려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흔해빠진 독서 2018. 3. 28. 12:2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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