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개울이 있었다. 개울을 따라 달리던 둑방의 중간 쯤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내가 처음 나무라고 생각했던 나무는 이 느티나무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면 맞다. 땅 위로 곧게 솟아 올라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며 좌우로 벌어진 나무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거대한 대칭이 마치 내가 처음 만난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느티나무를 좋아한다.


잎이 무성한 계절이 되면 바람이 살짝 불때마나 녹음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흔들린다'는 동사가 그렇게까지 평화롭게 느껴진 적이 그 이후론 내게 없다. 무성한 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저 내리고 그늘 밑에서 장기를 두던 노인들이 옹기종기 둘러 앉아 있던 곳, 나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그 주위를 빙빙 돌다가 해질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 나무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던 나무였는지도 모른다. 몇 해전 우연히 그 부근을 지날 때 다시 찾았던 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나무가 되어 있었다. 거인의 어깨처럼 대칭을 이루며 벌어진 느티나무의 자리에 왜소하게 헐벗은 나무 한그루만 서있을 뿐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 나무는 왜소하고, 여기저기 부러진 나무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볼품없는 나무를 기억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껏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를 더듬거리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겨울 쪽에 더 가까운 단지 내 느티나무에 마음이 쓰인다. 한 참을 울고 난 사람의 눈시울 같아서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된다. 어둠보다 더 짙은 실금으로 제 갈길을 찾아가는 저 가지의 끝,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부어오른 눈같아서 한컷 담아두었다.

나쁘게 말하다 2018. 4. 2. 20:41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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