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요 며칠 내 바지 주머니 속에서 낯선 물체가 하나 만져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뾰족한 무엇인가 내 허벅지를 찌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동전, 자동차 키, 지갑, 볼펜, 라이타 등이 있어야 하는 곳인데,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쇠덩어리의 느낌이 느껴졌다. 손을 넣어 꺼내보니 처음 보는 손톱깎이였다. 나는 이 손톱깎이가 언제부터 내 바지 주머니 속에 있었는지 요 며칠 궁금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만 잠깐 궁금해 했다가 이내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 주머니가 불룩해져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물건을 꺼내 놓고 정리했다. 공항검색대를 통과할 때 몸에 있는 쇠붙이를 모조리 꺼냈다가 다시 주섬주섬 챙기는 일이 몹시 귀찮기만 했는데 꼭 그랬다. 다 쓴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보다 눈에 보이는 곳에 처박아두고 금방 잊는 성격이어서 내 주머니는 언제나 불룩한 편이다. 나는 내 책장에 꽂힌 책을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하는 일 외에는 그리 엄격하지 못하다. 다 본 책이 제자리에 꽂혀있지 않으면 다소 신경질적이기까지 하지만 그밖에 것에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책상 서랍이나 주머니 속은 언제나 뒤죽박죽이고 정리를 해도 그 가지런함이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한번은 드라이해 옷장에 보관해둔 겨울 코트 속주머니에서 지난 겨울 찾았던 바다 어디쯤에서 지출한 실내포차 영수증과 조개껍데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때는 마치 기억 속의 유물을 발견한 것처럼 낯선 사물 앞에서 잠깐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의 지난 겨울을 증거해주는 조개껍데기에 아주 잠깐 즐거웠다. 그런데 나의 생활 속에 끼어든 이 낯선 손톱깎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내 일상에서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 것일까? 손톱이나 발톱은 주기적으로 정리를 하는 편이지만 내가 사용해 본 기억이 없는 낯선 물건이 요 며칠 주머니 속에 있었고 나는 무신경했던 것이다.

 

이 생경함은 꼭 손톱깎이가 아니라 주머니 속에서 셔틀 콕을 발견하거나, 티스푼이 나왔어도 지금과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그만큼 나의 일상과 거리가 먼 낯선 사물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 물건으로 요즘 A4를 묶어놓은 스테이플러 심을 해체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손톱깎이를 볼 때마다 내 손톱과 발톱을 한번 더 보게 된다. 고리에 손을 걸고 의미없이 빙빙 돌리는 것도 새롭게 생긴 버릇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아내는 주머니 속에 물건을 넣고 다니지 말라고 한다. 나야 내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불룩하게 솟아오른 주머니가 좋아보이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핸드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살 때나 버스를 탈 때마다 백팩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주렁주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지만, 또 주머니마다 지정된 자리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지만 몸은 머리보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언제나 즉각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그 자리에서 꺼내놓았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편했다. 그런 손톱깎이에서 갑작스레 내 얼굴이 보인다불쑥 출현한 낯선 사물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물들이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쁘게 말하다 2018. 5. 2. 13:16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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