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머리를 깎는 다고 집을 나왔다 담배 한 갑과 아이스커피를 한잔 사서 나무 그늘에 섰다 머리를 먼저 깎고 관악산을 오를까 목욕을 하고 업체 사람들을 만날까 이력서가 안주머니에 있으니 안도하며 담배를 하나 물었다 일단 얼음이 녹을 수 있으니 커피를 먼저 마시자 관악산은 언제든 오를 수 있으니 목욕을 하고 업체 사람들을 먼저 만나자 그늘을 따라 자리를 옮기다 보니 관악산이 푸르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얼음은 녹고 있었다 원을 그리며 나무를 돌고 있는 발걸음이 불규칙적이다 계약은 성사될 것이니 담배를 한대 피우고 관악산으로 가자 이력서는 녹을 일이 없으니 커피를 먼저 마시자 집에는 다림질을 하는 아내가 있고 나는 조용히 현관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우면 된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겨져 있을 것이다 업체사람들은 나를 기다리며 히히덕거리다 퇴근했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관악산을 오르는 것이 좋겠다 그림자를 따라 돌면서 하루 종일 관악산을 바라보다 이발을 하고 귀가했다

『시로여는세상』, 2016년 가을호

집시의 詩集 2020. 1. 5. 23:14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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