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 영원히

 

 

   공항에는 유리창이 많았다 온통 비행기가 지나간 구름들뿐이다

   얼굴을 살짝 두드리면 하품하는 산 너머와

   오른쪽 접시를 왼쪽으로 옮기는 노인의 무릎 위로 저녁은 붉은 토마토 스프처럼 끓는다

   토마토 얼룩과 일회용 스푼과 함께 우리는 구겨진 냅킨의 표정을 짓는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내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모차에서 졸고 있는 검은 구름, 비가 내리는 유리창으로 암스테르담이 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상공을 지나는 동안

   구름 위에서 구름의 표정으로,

   나의 그림자 속에 잠들어 있는 여자를 상상했다

   바람이 호수가 위를 불어나가고 기차는 아직 그녀의 무릎 언저리를 순환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표정이 없는 구름의 무늬에 비하면 내가 쓰고 있는 시는 지나치게 인위적이었다

   종결어미를 앞에 두고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문장들,

   한번도 닫힌 적이 없었던 나와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던 나

 

   이렇게 멀리까지 가도 되는 것일까?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는 저녁처럼

   점진적으로 다가가는 마음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옮겨갈 수 있으면 좋겠다

 

   유성이 지나가는 동안 소원을 빌지 못했던 우리들은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단 한번, 영원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까

 

   비행기를 타면 우리는 열을 맞춰 질서를 지킨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반갑고 애틋하다

   낯선 자들과 함께 서로의 죽음에 대해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함께 국경을 넘을 자격이 충분했다

 

 

 

- 문화 웹진 』, 2018.9.

 

 

 

집시의 詩集 2020. 1. 15. 00:33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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