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표정


   나에게는 표정이 없다 계약서에 찍어 둔 도장처럼 감추어야 할 마음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창 밖에서 누군가 내 얼굴 위로 걸어오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와 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하는 성상들, 
   그들은 모두 내 얼굴 위에서 웃고 있었다 어두운 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우산꽂이에서 줄줄 물이 새어 흘렀다 웃는 얼굴은 그녀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표정이 풍부한 그녀의 얼굴을 좋아한다 
   그녀를 위해 낙엽지는 표정을 주워 책장에 묻어 두었다
   얼굴을 열고 손을 집어넣으면 가슴께에서 만져지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 『시사사』, 2019, 5~6월호

집시의 詩集 2020. 1. 15. 00:45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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