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끈, 두 눈을 감는 동안


함성이 들려오는 쪽으로 백인 소녀들이 뛰기 시작했다 오늘밤 가장 뜨거운 곳은 어디일까 그녀들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 샌들을 벗어들고 멀리서 새어 나오는 불빛 앞에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발자국들은 어지럽게 낙엽과 함께 뒹굴고 있었다 넓은 활엽으로도 덮을 수 없는 자국이 이 숲 속에 가득했다 함성의 내부에는 소리 지르지 못하고 틀어막힌 입들이 많았다 질끈, 이라는 모양을 몰래 엿보다가 소녀들은 길을 잃었다 하루가 길었다 분장이 지워지기 전, 각자 맡은 배역을 천천히 소화했다 소녀들은 목발을 사용하는 연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숲의 한 가운데는 고요했다 함성을 만들고 있는 것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시인동네』, 2016, 11월호

집시의 詩集 2020. 1. 15. 00:52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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