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폐


길목마다 당신의 숨을 기억하는 어두운 모퉁이

어두운 숲에서 자고 있는 나의 폐를 생각한다
숲이 일렁일 때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거친 숨을 생각한다

계단을 오르다 마주친 아래층 아이와
계단에 세워둔 어린이 자전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의 검은 얼굴과
내가 들고 있는 검은 봉지를 번갈아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 솔직하다

계단은 건물의 내부를 타고 오른다
규칙적으로 접었다 펴는 방식이
계단의 유일한 질서

계단을 오르는 내내
당신 앞에 앉아 질서를 지키고 있는 
나의 무릎을 생각한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당신의 숨

숨을 쉴 때마다 말라가는 얼굴,
나를 뱉어내는 재채기

몰래 빠져나가는 당신의 숨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사라질 수 있을까

- 『시와시학』, 2019, 여름호

집시의 詩集 2020. 1. 15. 10:2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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