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시간


나는 음악의 재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는 일은 기술이 필요했다 번번이 사랑에 실패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배가 고팠다 귀가 가려웠다 다리가 저렸다 오랫동안 변비였다 나는 결혼을 했지만 직업을 잃었고,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등에 짊어 졌다 혼자서 욕을 하기에 약수터 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헬리콥터의 그림자가 시끄럽게 산중턱을 깎아내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적당히 무덤 같은 곳, 이제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그때 그녀의 샤프를 훔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야간 자습이 끝나고 그녀의 자리에 잠깐 앉았다 잠이 들었을 뿐이었다 덩치가 큰 짐승의 맥박이 태연하게 뛰고 있는 것처럼 잠깐 동안 공룡의 심장이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 『시로여는세상』, 2016, 가을

집시의 詩集 2020. 1. 17. 18:0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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