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면 하는 일


   극장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다 나온다 영화를 보는 일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심심하면 하는 일
   남자 여자 남자 여자 성별을 바꿔가며 앉는다

   어둠 속에서는 빛이 귀하다 옆 사람을 몰래 흘기던 시선을 순하게 내려 놓는다 가만히 쥐어보는 손으로만 찌릿찌릿
   등장인물들은 골목 안쪽에서만 뛰어다니며 놀았다
   볕이 들지 않는 곳으로만 쥐들이 돌아 다녔다 우리의 어두운 몸은 쥐들의 길이었다

   제재소 뒤뜰에는 사정없이 톱밥이 날리고
   까만 열매를 따먹고 혓바닥이 검게 달아오른 여자애들만 담 밑에 붙어 있었다

   그늘 속에 가만히 앉아서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벅지에 멍이 들거나 무릎이 깨지는 일은
   열매가 익기를 기다리다 심심하면 
   여자애들이 하는 일

   담벼락 밑으로 돌을 던지는 것은
   여자애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길 기다리다 심심하면 
   소년들이 하는 일이었다

- 『현대시』, 2016, 9월호

집시의 詩集 2020. 1. 18. 09:00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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