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슥


짐승은 귀신을 본다
서늘한 그림자가 지붕을 넘어오면 개는 짖는다
바람 속에 감추고 있던 펜으로 지붕 위에 남기는 연월생시
독 오른 팔뚝이 바람 속에서 불쑥
사주를 적고 흐릿해진다, 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앞에 두고
사람들의 생활은 위태로울까

기도는 너무 빨리 타오르는 말
불만이 유일하게 헤어지는 형식이므로
연기로 몸을 풀어헤치는가

눅눅하게 베어있는 습기가 이승의 것이라면
연기는 지붕을 비집고 날아가는 부족들의 기도로 남는다

독이 올라 허리를 부풀리는 항아리 속으로
문지를 때마다 지네들이 들끓었다

흉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죽음이 숫돌에 칼을 가는 소리처럼
결별은 날카로워야 한다

무덤을 지우려 바람은 낙엽을 쓸고
뒤이어 여자는 자리를 걷는다
바람이 슥슥 분다


- 『시인동네』 2013년 봄호

집시의 詩集 2020. 1. 19. 09:00  트랙백 (0) : 댓글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Copyright ⓒ 내가 쓰는 한 권의 두꺼운 책, All Rights Reserved. Since 200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