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Budapest

 

우산 밑으로 굴러 들어오는 바퀴에 대하여


우산을 쓴 사람들은 검은 봉지에 무거운 마음을 담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퀴는 굴러갔다 두꺼운 종아리는 계속해서 퉁퉁 불어 터지고, 부러진 다리, 깁스의 정확한 표기법을 고민하는 동안 전화를 거는 어두운 우산은 무심하게 물웅덩이를 건너뛰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말고 엄마를 생각하던 여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이제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 딴딴따단, 소리없이 적어보는 결혼행진곡 유리창이 커다란 실내에서 창 위로 맺히는 장면들을 사람들은 받아 적었다 아스팔트를 두세번 발음하면서 내가 생각해낸 것은 고작 채찍이었다 고작 채찍이라니, 어둠의 안쪽이 사정없이 찢어지고 있었다 도로 위로 한줄씩 빗금을 그으며 바퀴는 굴러갔다 밤 늦은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잠시 기도하기도 했다 첨탑보다 먼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뒷모습을 향해 조용히 마음을 보태주기도 했다 제발 모퉁이를 돌아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검거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루 종일 두서없이 책장을 넘겼다

 

- 『문학나무』63호, 2017, 여름호

집시의 詩集 2020. 1. 23. 14:15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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